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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판, 726쪽, 수준
禮山 李喆行 宗師는 부친 道山 李東安 大奉道와 全貞觀玉 正師의 5남 4녀 중 차남으로 서기 1928년 10월 16일 전남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신흥부락에서 출생하였다. 원기 19년 12월 8일 부친 도산 대봉도의 연원으로 신흥교당에서 입교했으며 원기 38년 4월 응산 이완철 종사의 연원으로 다시 출가, 6․25사변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수용한 이리보육원 총무로 전무출신 생활을 시작하였다.
원기 42년 이리 보육원 부원장에 임명되어 대외적으로 원장의 역할을 대행하면서 당시 戰後 부랑인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전북 부랑인 수용소장을 겸하여 사회정화사업의 일익을 다하였다.
이후 예산 종사는 원기 48년 이리보화당 부이사에 봉직하면서 선친 도산 대봉도가 창설한 보화당을 크게 중흥 발전시켰다. 원기 55년 1월 여자 수도원의 기본 재산이 된 서울보화당을 설립하여 초대사장에 임하였고, 원기 57년 이리시 중심지에 역전보화당을 설립했으며, 총부 유지를 튼튼히 하기 위해 원기 61년에 전주보화당을 설립하여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경제적인 숨통 역할을 하였다.
예산 종사는 자선기관인 이리보육원에서 10년, 산업기관인 보화당에서 28년을 봉직하면서도 공부심을 놓지 않는 수도인의 모습으로 귀감이 되었다. 산업기관의 책임자로 있으면서「일하며 공부하고 공부하며 일하자.」는 신념으로 대종사의 영육쌍전 이사병행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社訓도 「늘 정진하자. 늘 쇄신하자. 늘 봉사하자.」로 정하고 기관을 운영했다. 공부하는 수도인의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새벽 좌선과 교전공부 법회참석 후진육성 등 사업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영육쌍전의 표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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